해삼 정원 해저 통로
향유고래와 대왕오징어

해삼 정원 해저 통로

심해 4,000미터 아래, 거의 편평하게 펼쳐진 심해 평원의 진회색 퇴적층 위로 창백한 해삼들이 조용히 무리 지어 기어다닌다. 이들의 연약한 몸체는 흐릿한 망간 단괴들 사이를 느릿느릿 가로지르며, 400기압의 냉수 속에서 오직 이 어둠만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인 생명체들이다. 그 광막한 수층 위, 가늠할 수 없이 먼 위쪽에서 거대한 향유고래(*Physeter macrocephalus*)가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를 옆으로 내몰며 격렬하게 추격하고 있다. 고래는 짙은 회색과 숯빛 피부에 수십 년의 전투가 새긴 흉터를 지니고, 오징어는 붉은 황갈색 몸통을 비틀며 팔과 촉수를 사방으로 뻗은 채 갈고리 달린 빨판으로 맞서 싸운다. 격돌의 흔적은 어떤 인공조명도 없이 오직 생물발광으로만 드러나는데, 교란된 부유 플랑크톤과 찢긴 조직에서 번지는 청록빛 호弧가 어둠 속에 흐릿하게 타오르다 사라진다. 그 싸움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직 파편과 유기물 입자들이 해양 설처럼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으며, 까마득히 먼 해저의 해삼 군락을 향해 내려가고, 차갑고 고요한 물은 그 모든 것을 아무런 목격자 없이 그저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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