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자국 횡단
해초 초원

닻 자국 횡단

지중해 연안의 수심 5~8미터 아래, 포시도니아 오세아니카(Posidonia oceanica)가 이루는 광활한 해초 초원이 탄산염 모래 위에서 조류에 실려 부드럽게 물결친다. 수면을 통과한 한낮의 햇빛이 굴절되어 흔들리는 코스틱 무늬를 초원 바닥에 새기는 가운데, 군데군데 산소 기포가 햇살에 반짝이며 살아 있는 잎사귀 위에서 빛난다. 초원 한가운데에는 닻에 의해 뜯겨나간 타원형의 날상처가 생생하게 남아 있어, 어두운 섬유질 매트와 뿌리줄기가 날카로운 절단면을 드러내고, 부러진 잎 조각들이 벌거벗은 모래사장 위를 천천히 가로지른다. 이 상처의 경계, 즉 살아 있는 초원의 초록빛 가장자리에는 어린 도미류와 어린 놀래기, 실처럼 가는 해마류, 그리고 반투명한 새우들이 모여들어 잎 사이에서 은신처를 찾는데, 이는 해초 초원이 수많은 유생 및 유어기 생물들에게 필수적인 보육 서식지임을 말없이 증명한다. 포시도니아 초원은 성장 속도가 극히 느려 1센티미터 성장에 수십 년이 걸리는 장수 생태계이며, 이 단 하나의 상처도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생물학적 구조물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수주(水柱) 속을 떠도는 미세 입자들과 함께 이 정적 속에 무게 있는 시간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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