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심류의 거울물고기
대륙사면

등심류의 거울물고기

수심 260미터의 대륙사면, 햇빛은 이미 거의 소멸하여 남은 것이라곤 위쪽 먼 곳에서 간신히 스며드는 희미한 코발트빛 잔광뿐이다. 수압은 약 27기압에 달하며, 차갑고 무거운 물이 완만하게 경사진 사면을 따라 등심선 방향으로 흐르면서 연회색 퇴적물 표면에 아주 가는 결을 새겨 놓는다. 그 흐름 속에서 도끼고기(hatchetfish)와 어린 유광어류(bristlemouth)들이 퇴적물 위 몇 미터 높이를 무리 지어 이동하는데, 그들의 거울처럼 평평한 옆면이 잔광에 반사되어 찰나의 은빛으로 번쩍이다가 이내 모서리만 남긴 채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깊고 어두운 홍채를 가진 크고 둥근 눈과 투명한 지느러미는 이 깊이에서 극도로 희박한 광자 하나하나를 모으도록 진화한 것이며, 복부 발광기관에서 나오는 아주 희미한 생물발광 점들이 더 깊은 어둠 속에서 간간이 명멸한다. 해양설(marine snow)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이 사면은 인간의 시선과 무관하게 수백만 년 동안 스스로 존재해 온 세계이며, 그 어떤 증인도 없이 오늘도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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