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푸름 속 경사면
박명대

먼 푸름 속 경사면

대륙사면이 차가운 코발트빛 어둠 속으로 완만하게 가라앉으며, 그 표면은 마치 거대한 목탄 평면처럼 잿빛과 남색 사이의 단조로운 색조로 펼쳐진다. 수심 400~500미터에 이르면 태양광은 거의 소진되어, 위로부터 스며드는 희미한 잔광만이 물기둥을 통해 간신히 여기까지 닿고, 그마저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청흑(靑黑)의 공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압력—약 40~50기압—아래에서 삶을 이어가는 생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생존 전략을 진화시켰다. 소형 등불고기(lanternfish)들은 은빛과 흑색이 뒤섞인 옆구리를 가져, 위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빛과 구별되지 않도록 역음영 위장(counterillumination)을 구사하며 중층수에 느슨하게 흩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는 유리 새우들이 투명한 몸체로 사실상 물과 하나가 되어 떠다니며, 안테나의 굴절선과 작은 눈의 어두운 점만이 그들의 존재를 암시할 뿐이고, 이따금 깊은 수중 저편에서 청록빛 생물발광이 차갑게 명멸하며 빛 한 점 없는 이 세계에 스스로 빛이 되는 생명들이 있음을 조용히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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