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850~950미터, 빛이 거의 소멸한 이 심연에서 태양의 흔적은 위쪽 먼 곳에 희미하게 남은 코발트빛 잔광으로만 짐작될 뿐, 수온은 4~6°C 부근으로 차갑고 수압은 약 85~95기압에 달해 생명체의 모든 생리 기능이 이 극한 환경에 맞게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다. 검은 벨벳처럼 주변 어둠 속으로 녹아드는 드래곤피시(Stomiidae과)들이 각기 다른 거리에서 홀로 유영하며, 그 날렵하고 긴 몸통을 따라 청록빛 발광기관(photophore)들이 점선의 별자리처럼 어둠을 가로질러 희미하게 빛난다. 이 발광 점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포식과 종 인식, 그리고 역광 위장(counterillumination)에 복합적으로 기능하는 생물학적 언어이며, 가늘고 투명한 턱수염과 유리 바늘 같은 이빨의 윤곽이 그 빛 속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사라진다. 드문드문 떠내려오는 해양 설편(marine snow)은 이 수층이 표층 생산성과 심해저를 잇는 생물지구화학적 통로임을 말없이 증언하며, 어떤 목격자도, 어떤 빛의 원천도 없이 이 세계는 언제나 이렇게 존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