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흔적 스치다
챌린저 해연

푸른 흔적 스치다

차갑고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 수심 약 10,984미터에 달하는 지구의 가장 깊은 지점 바로 위의 수층에는 청록빛 생물 발광의 흔적들이 먹물 실처럼 호를 그리며 스러져간다. 이 빛은 어떤 외부 광원도 없이 오직 미세한 생물들 자신의 생화학적 반응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수면의 빛이 전혀 닿지 않는 완전한 무광층에서 생명이 스스로 발하는 유일한 신호다. 그 순간적인 발광이 부드럽게 일렁일 때마다 해양 설雪처럼 부유하는 극미세 입자들과 유기물 파편들이 드러나고, 그 너머로 희고 베이지빛을 띤 퇴적물 평원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 1,100기압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압과 섭씨 2도 안팎의 냉수 속에서, 자이언트 크세노피오포레가 섬세한 원반 형태로 퇴적층 위에 자리하고, 반투명한 몸의 하달 달팽이고기 한 마리가 바닥 가까이를 유영하며, 저 너머에서는 단각류 군집이 침강 유기물 주변에 무리지어 생명의 순환을 이어간다. 태평양판이 필리핀해판 아래로 섭입하며 만들어낸 이 마리아나 해구의 극단적 심연은, 그 광대한 정적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완전히 무관하게 스스로의 법칙으로 살아 숨 쉰다.

Other languages